
릴타치의 Boombap Mixtape는 제목부터 방향을 선명하게 말하는 앨범이다. 그런데 실제로 재생을 시작하면 한 가지 장르의 교과서라기보다, 당시의 랩 감각과 작업량을 한꺼번에 쏟아낸 긴 러닝타임의 기록에 가깝다. 2020년 1월 30일 공개된 이 앨범은 공식 음원 정보 기준 29곡, 약 1시간 17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EP처럼 핵심만 남기기보다, 스킷과 인스트루멘털까지 넣어 한 시기의 에너지를 통째로 보존한다.
이 글의 맨 위에는 공식 음원 페이지를 배치했다. 리뷰에서 확인한 사실은 음원 서비스의 앨범 정보와 트랙리스트를 기준으로 정리했고, 곡을 들으며 느낀 속도감과 질감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인 감상으로 구분했다. 제목에 Boombap이 들어가지만, 모든 곡이 전통적인 붐뱁 비트만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앨범은 붐뱁이라는 단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트랩, 클럽 랩, 프리스타일, 짧은 스킷을 오가며 릴타치의 폭을 보여준다.
앨범 정보와 트랙 구성
아티스트: 릴타치(Lil tachi)
앨범: Boombap Mixtape
발매: 2020년 1월 30일
수록: 29곡, 약 1시간 17분
레이블·유통 정보: WEDAPLUGG Records, Kakao 계열 유통 표기
주요 표기곡: sippin like thw wayne
트랙 흐름: AZYE, sippin like thw wayne, perfect, C.P Company, A hundred million times, 여러 개의 skit, OverSover, ok, Aight, pull up fuckin club, MAXIM, god of trap, bustdown rules, OH4real, Gundam, chain, Dance!, 인스트루멘털과 마지막 곡 간지의 제왕
첫 곡 AZYE는 앨범을 여는 방식부터 거칠다. 누군가에게 이 곡은 완성된 서사의 시작이라기보다, 작업실 문을 열고 바로 마이크를 켠 순간처럼 들릴 수 있다. 이어지는 sippin like thw wayne과 perfect는 제목의 태도와 발음의 리듬을 앞세워 앨범의 얼굴을 만든다. 문장을 곱게 다듬어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비트가 그 뒤를 따라가는 듯한 속도가 있다.
C.P Company와 A hundred million times로 넘어가면 릴타치가 멋을 만드는 방식이 드러난다. 비싼 물건이나 성공을 설명하는 데 오래 머무르지 않고, 특정 이름과 움직임을 리듬의 재료로 사용한다. 그래서 이 구간은 가사의 정보보다 반복되는 발음과 강세가 더 빠르게 귀에 남는다. 랩의 의미를 한 줄씩 해석하기보다, 어떤 단어가 비트 위에서 얼마나 튀어 오르는지를 느끼는 편이 어울린다.
Boombap Mixtape에서 스킷은 장식이 아니다. skit 1부터 skit 4까지의 짧은 구간은 긴 앨범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는 컷처럼 기능한다. 한 곡의 감정이 다음 곡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방식 대신, 일부러 흐름을 끊어 새로운 표정을 보여준다. 이런 편집은 완성도를 깎는 요소가 아니라 믹스테이프라는 형식의 자유를 살리는 장치다. 모든 곡이 싱글처럼 독립적으로 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중반부의 OverSover, ok, Aight는 제목 자체가 짧은 만큼 곡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설명을 쌓기보다 한두 개의 표정과 반복으로 분위기를 잡고, 다음 트랙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pull up fuckin club과 MAXIM은 제목에서부터 장소와 소비의 이미지를 불러오지만, 그 안의 핵심은 과시보다 움직임에 있다. 클럽에 들어가서 무엇을 봤는지보다, 그 공간의 속도에 어떻게 몸을 맞추는지가 중요해진다.
god of trap과 bustdown의법칙은 앨범 제목에 들어간 붐뱁의 고정관념을 다시 흔든다. 드럼과 저음의 압박, 짧게 끊는 랩, 전진하는 후렴이 앞에 서면서 트랩의 문법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앞부분과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는다. 릴타치의 랩은 비트가 바뀌어도 빠르게 박자 안으로 들어가고, 단어를 밀어 넣는 방식이 앨범 전체를 연결한다.
OH4real과 Gundam을 지나면 앨범은 한층 더 장난스럽고 직접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히 Gundam은 제목이 주는 만화적 이미지와 랩의 추진력이 겹치면서, 실제 장면보다 상상 속 캐릭터를 호출하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릴타치의 장점은 진지한 자기소개와 유쾌한 과장을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과장된 문장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현실의 공약처럼 받아들이기보다, 랩이 가진 놀이의 언어로 듣게 만든다.
후반부의 chain과 I like strawberries, One combo, Dance!는 길고 복잡한 앨범을 다시 몸의 감각으로 되돌린다. chain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한 곡 안에 여러 장면을 넣고, I like strawberries는 제목부터 예측을 비껴간다. One combo는 한 번에 밀어붙이는 인상을, Dance!는 긴 시간 동안 리듬을 유지하는 인상을 남긴다. 이어지는 FOR TNC와 네 개의 스킷은 앨범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작업실의 장난기를 놓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마지막 인스트루멘털 세 곡은 보컬이 사라진 뒤에도 앨범의 속도를 기억하게 한다. time to shine, pump it, 너가지드래곤이아니라면은 랩이 없어도 비트의 방향과 분위기가 남는 구간이다. 마지막 간지의 제왕까지 듣고 나면 이 앨범이 특정 곡 하나를 중심으로 설계된 작품이라기보다, 릴타치가 여러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해 본 작업 노트라는 인상이 강해진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정제된 균형보다 과잉에 가깝다. 곡 수가 많고, 제목이 튀며, 스킷과 인스트루멘털이 중간중간 들어온다. 하지만 바로 그 과잉이 당시의 젊은 래퍼가 가진 집중력과 호기심을 전한다. 한 가지 표정만 고집하지 않고, 잘하는 랩을 다양한 비트 위에서 시험해 보며 자기 언어를 넓힌다. 앨범을 처음 듣는다면 전곡을 한 번에 완주하기보다 1부, 중반부, 후반부로 나누어 듣는 방법도 좋다.
Boombap Mixtape는 장르의 순도를 증명하는 앨범보다, 붐뱁이라는 단어를 발판 삼아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믹스테이프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싱글 모음이 아니라, 긴 호흡과 시행착오를 함께 담은 기록이기에 오히려 생생하다. 릴타치의 랩이 가진 속도, 발음, 장난기, 비트에 대한 반응을 한 번에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추천한다. 다만 곡 수가 많기 때문에 한 번의 청취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마음에 남는 구간을 표시해 두고 다시 돌아오는 편이 이 작품을 더 잘 즐기는 방법이다.